Monday, February 20, 2012

가든파이브 입주 청계천 상인과의 인터뷰

청계천 복원사업은 개인적으로 한국 도시계획 프로젝트 중 가장 성공한 사업 중 하나라고 생각하며, 복원사업을 추진했던 이명박 서울 시장의 대통령 당선은 많은 국민들도 청계천 복원사업을 높이 평가했음을 보여준다. 청계천 복원사업에 대한 높은 평가는 국내에 그치지 않는다. 내가 유학했던 프랑스를 예로 들면 2010년 봄에는 일드프랑스 도시계획연구소에서 청계천의 고가도로 해체 사례를 공부하기 위해 연구원을 파견하였고, 올해에는 파리 소르본 대학교에서 지리학을 공부하는 한 석사과정 대학원생이 논문 주제로 청계천을 선택하여 서울에 왔다.

그는 나를 통해 청계천 상인들 중 일부는 가든파이브로 터전을 옮겼다는 것을 알게 됐고, 신문지상을 통해 가든파이브 소식을 많이 들었지만 직접 그곳에 가보지 못했던 나는 지난 토요일에 그를 동행하게 되었다. 인터뷰는 계획하지 않고 갔으나 질문 한 가지에 상세하게 많은 것을 알려주셨던 청계천에서 가든파이브로 옮겨오신 사장님 덕분에 뜻하지 않은 인터뷰가 이루어져서 프랑스 학생 뿐만 아니라 나도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 이 분의 이야기는 아름답게 복원된 청계천과 초현대적 가든파이브의 화려한 외면 뒤에 가려진 곪고 있는 청계천 이주 상인의 상처에 대한 것이다.

장지역 가든파이브 입구




1. 인터뷰 배경

가든파이브 리빙관을 둘러보다가 문을 닫은 곳이 많아 토요일이라서 문을 닫은 것인지 항상 닫혀있는 것인지 물어보러 들어간 7층 매장에서 자발적 인터뷰가 발생하였다. 매장에서 일을 하고 있던 그는 처음 질문의 답변(주말이라 안나온 곳이 많다고 함)에만 그치지 않고 다른 이야기를 적극적으로 전하고 싶어하였다.

2. 생활사

가든파이브에서 공업용 전자기기를 판매하고 있는 인터뷰 대상자(남/50대/앞으로 A라고 지칭)는 20세에 시골에서 일할 것을 찾아 서울로 상경하였다. 그에 따르면 당시 청계천은 무엇이든 해서 어떻게든 벌어먹을 수 있는 곳이었다. 그는 집도 없이 아무곳에서나 자면서 닥치는대로 일을 하기 시작하여 오늘날에는 한 가게의 어엿한 사장이 되었다. 이러한 생활사는 그에게만 한정된 것이 아니라 많은 청계천 상인들이 비슷한 삶을 겪었다고 이야기하였다.
그는 자신의 젊은 시절을 보낸 청계천이라는 공간에 대해 크나큰 자긍심을 가지고 있었다. 청계천은 시청에서부터 왕십리에 이르는 거대한 공간이라는 것을 강조하였으며 청계천이 한국의 경제발전의 기반이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청계천에는 없는 것이 없었고 오늘날에는 다른 유통시설이 많이 등장하였지만 이들 유통시설에서 살 수 없는 것을 구하려면 결국 청계천에 가야한다는 것이다. 그는 청계천에서 만들 수 없는 것은 오직 여자 뿐이라는 말을 알려주었다. 과장되게 이야기하면 청계천에서 비행기와 탱크도 구할 수 있다는 것이다.

3. 청계천 복원사업과 이주 과정

청계천 복원사업으로 인해 일부 상가는 철거대상이 되었고 철거가 되지 않는 상가 상인도 도로축소와 공사로 인해 영업에 지장을 받게 되었다. 이에 따른 대안으로 제시된 것이 가든파이브로의 이주였고 그가 있던 건물은 철거대상은 아니었지만 그도 이주를 결심하게 되었으며 2010년에 가든파이브로 이주하였다. (가든파이브는 2010년 6월에 개장)
이 과정에서 가장 피해를 본 것은 철거된 청계천 육교와 지상보도에서 영업을 하던 노점상들이었다. 돈이 없던 그들에게 가든파이브로의 이주는 그림의 떡이었고 새로운 청계천에서는 먹고 살 길을 잃어버렸다. A는 가든파이브로 정말 이주했어야할 사람들은 바로 이들 노점상이었으며 결국 돈없는 사람만 지게 되어 있다고 말하였다.

4. 상가분양가 과잉책정과 상권 미형성

가든파이브로의 이주 동기는 상가를 분양받아 차익을 실현하고 지금보다는 삶이 나아질 것이라는 기대가 가장 컸다. 사업초기 청계천 상인들은 한 평당 2-3백만원에 불과한 농지였던 가든파이브 부지를 개발하여 한 매장을 7-8천만원 정도에 분양받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였다. 그러나 서울시는 조성원가를 결코 공개하지 않았고 결국 6-10층 사이의 상가는 한 칸당 1억3천만원 정도에 1-5층 상가는 5억원 정도에 분양이 되었다고 한다. 생각했던 것보다 분양가가 높아지자 많은 상인들은 가든파이브로의 이주를 포기하였고 높은 분양가에도 계약을 했던 사람들은 결국 골칫덩어리를 떠안게 되었다.
높은 분양가로 인해 이주한 상인들의 수가 많지않자 상권 형성에 심각한 문제가 발생하였다. 일단 서울 외곽 허허벌판 옆에 위치한 가든파이브는 청계천에 비해 인파가 몰리지 않다보니 절대적으로 손님이 적은 문제가 있었다. 더군다나 청계천의 가게는 가게별로 전문화되어 있어서 고객이 원하는 물건이 없는 경우 인근 가게에서 구입하여 고객의 요구를 맞추어주는 체제로 운영되고 있었는데 가든파이브로 이주한 상인이 적다보니 가든파이브에서 일하는 상인들은 주변에서 물건을 구할수 없어 청계천으로 가서 물건을 구해야해서 많은 상인들이 청계천으로 돌아갔다.
그렇다면 다시 청계천으로 돌아갈 생각은 없냐고 A에게 물었지만 A의 경우 지나가다 들어오는 개인이 아닌 고정거래처와 거래를 하기 때문에 상권미형성에 따른 타격이 적었고, 예전에 청계천에 있을 때와 비슷한 수준에서 장사가 된다고 하였다. 또한 가든파이브의 널직한 매장에서 일을 하다보니 예전의 비좁은 청계천 매장으로 다시 돌아갈 생각을 하는 것이 쉽지 않다고도 하였다. 하지만 그의 사례는 매우 드문 편에 속하고 대부분의 상인들은 가든파이브에서는 장사를 할 수 없게 되었다고 하였다.

5. 가든파이브의 빈 상점들의 이용현황

상권미형성으로 가장 큰 타격을 받은 것은 1-5층의 매장을 분양받은 상인들이었다. 저층부는 고층부에 비해 임대료가 비싼 반면 유동인구는 없어서 상인들이 직접 장사를 할 수도 없고 임차인을 구하기도 쉽지 않다. 가든파이브에서 영세상인은 장사가 안되기 때문에 사무실을 유치해야하는데 저층부는 칸막이 없이 일반 상가형식으로 내부가 꾸며져 있어서 사무실을 유치할 수도 없다. 반면 6-10층의 고층부는 임대료가 싸서 (한 매장당 월세가 3-40만원) 들어오려는 사람들이 있고 매장간에 벽이 있어서 사무실로 활용할 수 있다. A는 투명유리가 아닌 반투명 유리로 된 매장은 모두 사무실이 들어와있는 것이라고 이야기하였다. 원래 지정업종이 아닌 타업종이 들어오는 것은 불법이지만 서울시에서는 이러한 상황을 눈감아주고 있어서 현재 가든파이브의 영업 공간 대부분은 비청계천 출신 사람들(A는 외부인이라고 지칭하였다.)이 운영하거나 청계천 상인이 진짜 영업은 청계천에서 하고 가든파이브에서는 영업을 하는 시늉만 하고 있다고 하였다. (원래 이중영업은 계약서상에 금지되어 있다고 함.)

투명 유리 매장과 반투명 유리 매장(사무실)

6-10층의 경우 본전 또는 본전에 약간 더 가격을 붙여서 팔 수 있는 상황이지만 가게 인테리어비용을 서울시에서 보조받은 경우도 있고 (약 천만원) 대부분은 상황이 더 나아지지 않을까라는 기대심리에서 상가를 매각하고 있지는 않다고 한다. 5층 이하의 저층은 구입가가 높아서 매각이 여의치 않은 상태로 저층으로 갈수록 빈 매장 문제가 심각하다. 빈 매장 문제가 심각해지자 서울시는 NC백화점, 이마트, 엔터식스 등의 대형매장을 저층부에 유치하였고 A에 따르면 상인들은 불리한 조건에 NC백화점과 10년 임대계약을 체결하였다. 매출액에 따른 임대료를 받기로 하였는데 매출액을 정확히 알기가 힘들고 임대료 수준이 낮아서 상인들에게 불리한 계약이었으며 계약과정에서 관리주체의 농간이 작용했다고 한다. 이미 장기계약을 해버린 터라 이제와서 어떻게 할 방법도 없다고 하였다.

관련기사: [가든파이브 집중해부 ③] "제발 좀 오세요"… 대기업 특혜에 상인들만 골병

고층부 공실: A는 관리비와 에너지 절약을 위해 주말에는 소등을 원하나 관리주체에서 상가활성화를 위해 필요없이 전등을 켜놓는다고 하였다.
텅텅빈 저층부: 가든파이브 전체에 걸쳐 공실이 나타나고 있지만 대형매장이 입주하지 않은 저층부 공실문제는 매우 심각하다.
공실에 둘러싸인 철수한 매장
같은 시각 사람들로 붐비는 NC백화점 내부

6. 가든파이브의 미래

A는 현재 가든파이브로 이주한 청계천 상인들은 지금의 답보 상태에서 빠져나오기 힘들 것이고 결국 가든파이브에서 청계천 상인들은 점차 사라지게 될 것으로 예상하였다. 위에서 언급한 재정적 문제 이외에도 가든파이브라는 현대적이고 깨끗한 공간과 청계천 상인들의 시끄럽고 지저분한 업종이 맞지 않다는 것이다. 그의 경우만 해도 지금하고 있는 똑같은 일을 가든파이브에서 하나 공장지대에 가서 하나 마찬가지이며 처음 그가 가든파이브에 입주하였을 때에는 엄격한 건물사용기준에 맞추느라고 꽤나 애를 먹었다고 한다. 가장 험한 업종이 입주하게 되어 있었던 가든파이브 Tool관의 경우 매장 수십개를 한꺼번에 사서 사무실로 이용하던 회사들의 불평 때문에 시끄럽고 지저분할 수 밖에 없는 청계천 상인들은 일을 할 수 없게 되어 그들을 위해 만들어진 공간에서 오히려 밀려나야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생기기도 하였다.

2012년 2월 현재 가든파이브 라이프 건물 안내도: 리빙관 1층에 청계천에 유명한 애완동물 가게들이 입주해 있는 것으로 나와있지만 실제로는 엔터식스라는 대형의류판매 매장 입주를 위한 공사가 한창이었다. 
 7. 초현대식 거대개발의 실패와 대도시 공간의 진화

개장 이후 지속적으로 신문지상에 보도되고 있는 가든파이브의 근본적인 문제는 본 블로그에서 이미 여러 차례 다룬 송도 신도시를 비롯한 다른 한국도시개발의 문제와 크게 다를 것이 없다. 즉 해결하려는 문제가 생겼을 때 그 문제를 해결하는데 집중하는 것이아니라 문제를 무조건 눈에 띄고 화려한 두바이식 개발로 해결하려는 데서 많은 문제점이 발생하고 있다. 동양최대규모의 고급상가, 초대형 옥상정원, 상가 사이의 널찍한 광장과 공원이 아름답기는 하지만 청계천 상인들이 이주해서 손해를 보지 않고 장사할 수 있는 여건과는 그닥 상관이 없다. 오히려 번듯한 외관과 인테리어를 갖춘 10층에 달하는 고층상가가 분양가만 높여 상인들의 이주를 가로막는 요인이 되었고, 주로 가로변1층에서 상행위가 이루어졌던 청계천 상인들의 업종을 어떻게 고층상가 내에서 소화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고려도 부족했다. 또한 높은 용적률과 낮은 건폐율로 인해 확보된 지상의 넓은 공간을 상권활성화와는 관련이 없는 광장과 근린공원으로만 활용하고 노점상 양성화를 위한 공간 등으로 사용하지 못하였다.

A는 인터뷰 마지막에 청계천 상인은 두 번 죽었다고 하였다. 청계천에서 한 번 죽고 가든파이브에서 다시 죽었다는 것이다. 거시적인 관점에서 보면 이명박 시장이 아니었더라도 서울 도심 바로 옆에 위치한 청계천의 재개발은 언젠가는 일어나게 될 일이었다. 대도시가 커지고 발전될수록 공업시설이나 공업형 상업시설은 외곽으로 밀려나게 되어 있으며 이는 서울 뿐만 아니라 전세계 모든 도시가 겪어온 현상(gentrification)이다. 그러나 청계천 상인들의 준혐오시설은 서울의 가장 끝 장지동에서조차도 너무나 빨리 발붙일 곳을 잃어버렸고 이는 서울시의 무조건적인 고급개발 탓이 크다. 고급시설 유지비를 부담할 수 없는 업종을 고급시설로 모아놓으면 유지비를 부담할 수 있는 고급업종에 의해 밀려나는 것은 당연한 일이고 이에 따라 청계천 상인의 멸종은 더욱 앞당겨지게 되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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